40년 금속예술가 인생 ‘김홍자 교수’

40 동안 금속공예가로서, 교육자로서 외길을 걸어 금속공예가 김홍자 교수가 미국에서 한국인 예술가로 주목 받고 있습니다

 

금속공예가로서 40년 외길 인생을 살아온 김홍자 교수는 미 주류 사회에서 한인들의 미술세계를 알리는 데 앞장 서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화여대에서 섬유예술을 전공하다가 4학년이었던, 1961년에 하와이로 유학 길에 오릅니다. 김 교수는 하와이대 재학 시절, 일본 유학생이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됩니다.

 

김 교수는 ‘코리아’와 ‘아메리카’를 조합한 ‘코멜리아’를 자신의 한국이름에 앞에 넣고, 남편의 성과 자신의 성을 조합해 만든 이름 ‘코멜리아 홍자 오킴’으로 미국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김홍자 교수는 본래 이화여대에서 섬유예술을 전공했지만, 인디애나주립대와 대학원에서 금속예술과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지금까지 금속공예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대학원 졸업논문 제출을 앞둔 마지막 학기인 1972년 메릴랜드주 락빌에 소재한 몽고메리컬리지 금속미술과 주임교수로 발탁되는 행운을 안게 됩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대학원을 갓 졸업한 동양 여성이 미국 대학 강단에 선 다는 것은 그녀의 개척정신과 두려움 없는 도전정신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지난 2003년에는 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을 위해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꿈과 현실’이란 주제로 고 백남준 작가를 비롯한 18명의 한국계 미국인 대표 작가들을 초빙해 특별전시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김교수는 한국문화를 미국에 알리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김홍자 교수의 작품들은 청와대, 영국 런던의 빅토리안 & 알버트 박물관,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뉴욕 뮤지엄 오브 아트 앤 디자인 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습니다.

 

김 교수는 단순한 장신구나 생활도구의 창작을 넘어 금속예술을 통한 표현영역의 확장에 힘쓰고 있습니다.

 

김홍자 교수에게 영감을 준 작가는 프랑스 후기 인상파 작가인 조지 쇠라와 아프리카의 마스크 였습니다.

 

자연과 인간의 융화하는 동양적 사유에 기반을 둔 작가들의 작품들과 한국과 미국에서 받은 교육의 융합 김 교수의 작품세계에 영향을 줬습니다.

 

 

김 교수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외부적으로는 자연 속에서 함께 유유자적하는 풍류를 간직하고 있고 내면적으로는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고 있습니다.

 

최근 김홍자 교수는 세계한민족여성재단으로부터 세계를 빛낸 한인 여성 문화예술인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김 교수는 지난 1977년에 신세계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미 전역은 물론, 캐나다, 프랑스 등 세계 각국에서 27회의 개인전과 국제교류전, 120회 이상의 전시회와 워크샵, 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김홍자 교수는 금속예술가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교육자로서 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김 교수는 실제로 82년과 83년도에 홍익대 교수 시절의 제자들과도 연락을 하고 지내며,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김교수는 단순히 전시회를 위한 작품이 아니라 자신의 직업, 소명이란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어 왔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쇳덩어리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녀의 손을 거치면 경이로운 예술작품으로 승화합니다.

 

40년 동안 강의와 작품활동을 해온 김홍자 교수는 작가로서, 교육자로서, 아내, 엄마, 할머니로 미국 땅에서 살아온 지 반 세기가 넘었습니다. 그녀는 한국전쟁 속에서의 어린 시절, 힘겨웠던 유학생활, 일본인 남편과의 결혼과 문화와 언어 차이의 극복, 금속공예가로서의 삶, 교육자로서의 삶을 회상해봅니다.

 

 

김홍자 교수는 2년 후 은퇴를 하게 되지만, 은퇴는 그녀에게 있어서 또 다른 시작입니다. 김 교수의 끊임없는 도전과 개척정신이 창조해낼 멋진 새로운 세계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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